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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TORY] TRUE ENDU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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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이동하는 데에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함축시키길 원했습니다.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닌 코스를 개척하고 그 가운데 바이크의 기술과 성능을 드높이길 원했죠. 이제는 그 바이크들이 미국 밀워키에 있는 할리데이비슨 뮤지엄에도 전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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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데이비슨 I Walter Davidson

1907년 월터 데이비슨은 할리데이비슨의 최초 대리점의 직원인 칼 랭(Carl Lang)과 도모하여 ‘시카고 모터사이클 클럽(the Chicago Motorcycle Club)’을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카고에서 코코모(인디애나주의 도시)까지 달려야 하는 엔듀로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였죠. 당시에 이 대회는 역사상 가장 긴 엔듀로 대회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코스는 총 거리 666km로 자갈과 모래로 깔린 곳들이 많았습니다.

 

경기에 임하기 전, 시카고 모터사이클 클럽은 10개 부문에서 입상할 걸 예상했지만, 클럽 내 전체 참가자 중 완주를 한 팀은 3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난항이 잦았던 탓이었죠. 그래도 월터 데이비슨은 이 대회 완주자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당시의 대회를 취재했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월터 데이비슨은 단 한 번의 펑크도 없이 코스를 완주했다고 합니다. 완주하는 데 걸린 시간은 8시간 30분. 하지만 월터 데이비슨은 다시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곧바로 다음 해에 월터 데이비슨은 시카고-코코모 인듀어런스 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 대회를 위해서 바이크 스킬을 가르쳐주는 코치도 고용했습니다. 그만큼 할리데이비슨의 도전 정신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듬해 월터 데이비슨은 대회 완주를 이전보다 이른 시간 내로 해냈고, 무려 5년 동안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내구성을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대회에 찍은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도로시 ‘닷’ 로빈손 I Dorothy ‘Dot’ Robinson

1920년대 말, 미국 미시간주에서 열리는 ‘잭 파인 엔듀로(Jack Pine Enduro)’ 대회는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타는 라이더들에게는 꿈 같은 대회였습니다. 이 대회는 3일 내내 오프-로드를 달려야만 했는데요. 심지어 평균 시속 40km로 체크포인트를 통과하지 않으면 탈락의 쓴맛을 봐야 하는 악명이 높은 이벤트였습니다. 코스는 크기가 큰 암석과 폭이 넓은 강 그리고 모래가 많은 곳과 숲이 우거진 곳 등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40km/h로 이동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수준이었죠. 그래서 바이크를 개조하지 않으면 대회 참가조차 어렵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대회에 1940년, 도로시 ‘닷’ 로빈손(이하 도로시 로빈손)은 디트로이트 할리데이비슨 매장의 직원으로 참가하여 우승을 거머쥐는 쾌거를 낳았습니다. 1934년에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해마다 라이딩 스킬을 키워나가다가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녀가 우승했던 대회에는 총 51명의 라이더가 참가했었습니다. 코스는 자그마치 약 810km에 달했죠. 그리고 대회 당일에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완주마저 쉽지 않으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대회의 소식을 전했던 뉴스를 찾아보면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치마와 힐을 신고 왔었던 사람들은 폭우 때문에 진흙이 많이 생겨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런 기상 속에서도 도로시 로빈손은 험난한 코스들을 공략하며 완주를 하기 위해 전진했습니다. 모터사이클에 올라 공식 코스를 달리면 나뭇가지가 시야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안면을 덮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주파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사이드카에 있었던 팀 동료인 찰스 토스(Charles Toth)와 함께 클래스 A 우승을 해냈습니다. 그녀는 “진흙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상황이 빈번했지만 나와 동료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포인트를 따겠다는 일념 하나로 우리는 전진했다”라고 우승 소감을 남겼습니다. 이런 그녀의 열정에 1946년 다시 한번 우승을 거머쥐며 그녀의 모터사이클 커리어에 큰 영광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할리 찰리’ 피트 I ‘Harley Charlie’ Peet

1988년 단 한 회만 개최되었던 대회, ‘트랜드-아마존 랠리(Trans-Amazon Rally)’는 콜롬비아의 카르타제나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총 14,000km에 달하는 랠리 대회였습니다. 루트 그 자체는 한 마디로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걸맞았습니다. 정글과 산 그리고 바위와 진흙에 사막까지 대자연 그 자체가 바로 코스였습니다. 대회 또한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자동차나 트럭 혹은 모터사이클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했죠. 본 대회에서는 총 50명의 모터사이클리스트가 참가했습니다.

 

플로리다에 사는 ‘할리 찰리’ 피트(이하 피트)는 이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서 지원팀을 이끌고 고국을 떠나 험난한 여정에 나서게 됩니다. 피트는 1985년 할리데이비슨 FXRP(당시 경찰 패트롤 모터사이클 모델)을 시작으로 모터사이클에 심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 각종 부품을 모아서 코스에 최적화된 상태로 조립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트는 모터사이클의 부분에 대해서 더 상세한 지식을 쌓게 되었고 이마저도 대회에 참석하는 일부라고 생각해 팀원들과 온갖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완주하기 위한 할리데이비슨 랠리 머신을 만들게 됩니다.

 

코스는 부문별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짧은 시간 내에 전체 코스를 완주하여 다른 참가자들과 시간을 겨루는 것이 있었고, 구간별로 시간을 측정하여 포인트로 입상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보다는 출발점에서 도착지점까지 어떻게 코스를 짜야 하는지가 관건이었죠. 볼리비아로 향했다가 강도가 들이닥쳐 대회를 포기해야 할 지경까지 간 팀도 있었습니다. 이 랠리는 30일 동안 달려야만 했는데 대회 24일 차에는 80팀 정도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대회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가 있죠. 그중에서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나온 팀은 4팀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피트는 그중 한 명이었죠.

 

대회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피트는 상당히 잦은 타이어 펑크로 고생했습니다. 게다가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코스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대회 내내 피트는 체중이 10kg이나 빠질 정도였다고 하니 그 고생을 짐작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피트는 완주에 이르렀고, 수상 부문 중 ‘가장 힘든 랠리스트’에 입상하며 대회를 마치게 됩니다.

 

 

멋진 역사를 가진 라이더들, 개척자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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